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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5.6 라이프 매일-청도 한옥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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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옥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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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현장-청도 한옥학교
한옥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산 속에 푹 파묻혀 '우리 것'을 다듬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 주 호기심을 참지 못해 그들을 찾았다. 청도군청 뒤 남산자락 중턱에 떡 하니 자리잡은 '한옥학교'.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전동 톱 돌아가는 소리, 대패질 망치소리가 쉼 없이 귓전을 때렸다. 초보 목수 23명. 오로지 한옥이 좋아, 한옥의 눈맛, 손맛에 미쳐 집을 뛰쳐나왔다.
비탈진 마당은 신명나는 일터였다. 윙~ 기계소리, 뚝딱 뚝딱 망치소리, 스~억 대패질소리.
둔탁했다. 하지만 귀를 쫑긋 세우니 장단이었다. 흥이 절로 났다. 23명이 짜기라도 한 듯 어깨춤을 추며 대들보를 두드리고 있었다. 장단이 고요한 산에 울려 퍼졌고, 메아리가 돼 되돌아왔다. 땀이 흘러내린 등줄기는 작은 폭포를 이뤘다. 덥수룩한 수염, 검게 그을린 얼굴은 옛 장인의 그것이었다. 밀짚모자 속 '전통'을 다듬는 눈빛은 예사롭지 않았다. 빛났고, 절
실했다. 장인의 고뇌였다.
한옥학교의 집짓기 과정은 3개월. 23명은 2기생이다. 3월부터 머물러 두 달이 훌쩍 지나갔다. 5월이 지나면 후배들을 위해 학교를 떠나야 한다. 한 달 수강료는 70만원. 먹고 자는 것까지 해결해야 해 웃돈이 적잖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하고 생업도 포기해야 했다. 인생을 바꾸지 않고는 입학이 녹록치 않았다.
30대에서 50대, 미혼에서 한 집의 가장까지 전국에서 다양하게 모였다. 대학 졸업자에다 군인도 공무원도 있었다. 시골에 내 집을 손수 짓기 위해, 직업 목수가 되기 위해 이 곳을 찾았다. 서울에서 온 윤주현씨는 전직 전자회로 설계 엔지니어이다. 2년전 인생을 바꾸기 위해 직장을 그만뒀다. 전문목수가 되기로 했다. 곧 마흔이지만 꿈을 위해 결혼도 미뤘다. 1년간 직업목공학교를 다녔고, 전문목수가 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윤씨는 "다듬고 두드릴수록 한옥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서 자영업을 했다는 박태남씨도 전문목수가 꿈이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보람된 일을 하고 있어 뿌듯하다"고 말했다. 대구서 출퇴근하는 김영섭, 박주동씨는 전원같은 내 집을 꿈꾸는 목수. 변숙현(44)교장은 "한옥이 좋아, 나무를 사랑해 모인 사람들"이라며 "그래서 심성이 넉넉하고 질박하다"고 말했다.
배움의 열정만큼이나 하루 일과도 쉼 없다. 한옥학교의 수업은 매일 오전 8시30분 참선으로 시작한다. 마당 옆 큼지막한 너와집이 바로 배움터(한 겨울에 온 듯 시원했다)다.
변 교장은 "23명 모두 목수일이 처음이어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며 "30분 참선을 통해 온 목적을 되새기고 자기관리를 다짐한다"고 말했다. 참선은 한옥 짓기에 대한 준비와 사색이다. 그리고 전동공구나 망치, 대패 등 위험성이 큰 도구를 사용하기 때문에 안전도 더욱 필요해서다. 오전 9시부터 1시간 가량은 너와집 마루에 앉아 그날 할 일에 대한 이론을 배운다. 이론은 대학에서 건축을 가르치고 있는 변 교장의 몫이다. 이후부턴 현장 실습. 오후 6시까지 줄곧이다. 두드리고 다듬기의 연속이다. 오후 6시면 하루 일과가 끝난다. 그러나 대다수는 너와집에 모여 설계공부를 따로 한다.
3개월 과정마다 작품이 하나씩 만들어진다. 지난 겨울 혹독한 추위 속에 배출된 1기생 5명은 네 모서리의 정자인 사모정을 지었다. 이번 2기생들은 한 단계 높은 우진각 지붕을 얹은 살림집을 짓고 있다. 한옥을 지으면서 간단한 재료는 학교에서 제공하지만 전문목수가 되기 위해선 갖춰야 할 장비가 많다. 모두 갖추려면 1톤 트럭 한 대분은 된다고. 그래서 동기끼리 힘을 합쳐 도구들도 하나 둘 장만하고 있고, 졸업 뒤에는 품앗이도 할 계획이다.
23명 한 가운데에는 칠순이 넘은 김창희 대목장이 버티고 있다. 실습 교수다. 조그마한 체구에 밀짚모자를 눌러쓴 노인은 기자의 인사에 말없이 합장으로 대신했다. 50년 넘게 한 우물을 팠다. "고향이 경북 고령이야. 살림집은 대구에 있지만 평생을 전국을 떠돌아다녔어.
절밥 많이 먹었지". 작품에 혼을 쏟다보니 벌어놓은 돈이 없다고 했다.
변 교장은 김 대목장을 이 시대 최고의 장인이라고 소개했다. 창덕궁 도편수를 맡았고, 부석사 무량수전 보수도 그의 몫이었다. 최근에는 해운대 해운정사 3층 목탑과 충북 청주의 5층 미륵탑 조형을 했다. 궁궐, 사찰 등 우리나라 웬만한 큰역사의 현장에는 김 대목장이 있었다. 전통 한옥에 김창희류의 기법이 전수되기 시작했고, 몇 해 전에는 인간문화재로 추천되기도 했다.
한옥학교는 6월이면 3기생을 받는다. 처음으로 여성도 들어온다.
변 교장에겐 꿈이 있다. 2만 5천평의 부지에 우리나라 전통건축의 요람과 고건축 노천박물관을 세우는 것. "겨우 걸음마를 뗐어요. 노동부 직업전문학교 인가부터 받을 계획입니다.
방학 때를 활용해 초.중.고생과 대학생들의 전통한옥 체험 캠프도 열 계획이구요".
취재가 끝날 무렵, 대목장은 의미있는 말을 건넸다.
"한국사람이 사는 집이 한옥입니다. 전 시대의 유산만은 아닙니다. 한옥은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생명력을 담아야 하고, 옛 것의 소중함도 묻어있어야 합니다. 그런 집을 짓게 할 겁니다".
마당 옆 2층 규모의 큼지막한 너와집은 '전통'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이종규기자 jongku@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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