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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질서한 걸 질서롭게 보는 걸 ‘안목(眼目)’이라고 한다. 문리(文理)가 훤하게 트이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느 분야에 도통(道通)한 셈이다. 도(道)란 된장과 김치 같은 것이라서 시간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숙성기가 필요하다. ‘이론’이란 것도 도의 경지로 격상되려고 하면 수탄 우여곡절을 거쳐야 된다. 목수의 길도 그렇지 않을까?
청도군 화양읍 법곡리 청도군청 뒤편 남산 낙대폭포 올라가는 길 한켠에 2003년 10월 자리 잡은 한옥학교 변숙현 교장을 만났다. 그는 영남대 건축공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현재 경북도 문화재 전문위원으로 있다. 한국 전통건축의 대들보 격인 영대 건축공학과 명예교수 김일진 박사(71)와 창덕궁 복원 당시 도편수였던 김창희 대목(74. 문화재수리기능자 목공 380호)을 통해 나무다루는 법을 배워 익혔다. 그를 통해 산중 생목(生木)이 벌목돼 어떻게 목재로 활용되는지, 수액 가득하고 혈기 방장한 나무를 어떻게 다스려야만 되는지 건축 목재에 숨겨진 흥미진진한 얘기를 듣고 싶었다.
좋은 나무가 좋은 목수를 만든다.
그는 목수가 아무나 될 수 없는 직업임을 강조하기 위해 인터뷰를 초입에 우스개 소리부터 내밀었다.
“예전 우리 부모님들은 자식이 공부를 못하면 너 당장 공부 집어치우고 목수나 되라고 윽박질렀습니다. 그런데 제가 목수 노릇 해보니 목수는 절대로 머리 나빠선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만이 목수로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이죠”
그는 나무를 생명체로 봤다. 나무를 멸시하면 나무도 사람을 멸시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집도 생겨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무를 인간과 동일시하려면 자연 경건한 기품을 갖고 있어야 된다. 사람도 자길 죽이려고 하면 발악을 한다. 나무도 마찬가지다. 자기 몸을 잘라 산 아래로 끌고 내려가면 필시 ‘앙탈’을 부릴 수밖에 없다. ‘나무가 앙탈 부린다’는 말이 폐부 깊숙하게 박힌다.
“나무를 위협하거나 겁줘 강제로 산 아래로 몰고 가면 언젠가 나무가 집주인한테 복수를 합니다. 나무에 균열이 생긴다거나, 부러진다거나, 비틀린다거나, 균형이 흔들려 붕괴한고 말죠.”
제대로 된 도편수, 대목이라면 절대로 나무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기분 나는 날 함부로 베는 게 아니라 산의 좌향, 나무의 좌향, 건축주는 물로 벌목장의 산주의 맘 상태, 생활형편까지 모두 고려해 가장 좋은 길일(吉日)을 택해 벌목일을 정한다는 말이다.
“나무 베는 날은 주로 처서가 지난 후부터 이뤄지는데 한겨울이 가장 좋죠. 수액이 나무 기둥과 줄기에 가득한 봄과 여름철엔 나무가 잘 베어 지지 않고, 벌목한 뒤 작업장까지 옮기기도 무척 어려울 뿐만 아니라 벌목한 뒤 건조시키기도 더 힘들게 됩니다.”
그가 짓고 싶어 하는 집은 결코 좋은 집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생긴 서민 주택인 민가다. 그는 민가를 두고 ‘참살이집’ 이라고 표현했다.
“나무를 너무 쉽게 대하는 세태가 안타깝네요. 제대로 된 한옥을 짓는 게 쉽지 않듯 제대로 된 목재를 구하기 쉽지 않다는 말인데, 좋은 집을 지으려면 산에 좋은 나무를 키워야 됩니다.”
콘크리트 집이 만연하고 있는 요즈음, 과연 이런 룰이 먹혀들 것인가? 그도 그게 어렵다는 걸 알면서도 예전 집짓기의 기본을 애써 고집한다.
“사대부들은 거의 문중 산이 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재목을 구할 수 있었죠. 하지만 먹고살기 급급한 민초들은 거목을 구입해 집짓기가 무척 힘이 들었습니다. 아무렇게나 생긴 목재를 가져다가 얼기설기 끼워 맞춰 집을 지으니 해학미가 돋보일 수밖에 없죠. 민화와 같은 민가가 생겨날 수밖에 없었고, 차츰 초가(草家)로 뿌릴 내렸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대감들은 집안의 위상과 체면을 위해 안채, 별당, 안 사랑채, 행랑채, 사랑채, 중사랑채, 청지기방 등 용도에 맞는 아흔아홉 칸 대저택을 지을 수밖에 없다. 그들이 일정한 시기마다 집을 보수하거나 새로 지을 경우 엄청난 양의 목재가 필요하다. 기둥감, 보감, 대들 보감, 추녀감에 걸맞은 수종의 나무를 오랜 시간을 두고 확보해나가야 한다. 어명이 내려도 집을 당장 지을 순 없는 일이다. “집지을 날을 받아 놓으면 목수들도 근신을 합니다. 주색도 멀리합니다. 혹시 부정 탈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죠. 벌목 당일엔 산신제를 꼭 지냅니다. 궁궐용 나무(춘양목)를 벨 겨우 ‘어명’을 외칩니다. 나무를 예우 해주는 것이죠. 일반목인 경우 ‘부디 용심을 잘 쓰시게, 곧 내가 좋은 생명을 줌세”라며 나무의 체면을 살려 주기도 합니다. 그 광경이 꼭 야외 연극을 연상시킬 정도로 진지합니다..“
벌목에도 요령이 있다고 한다. 넘어질 방향에서 반대쪽으로 45도 각도로 상하에서 번갈아 가며 베어나가다가 마지막엔 반대편에서 수평으로 내려치면 자연스럽게 산 아래 방향으로 쓰러지게 된다. 벌구를 잘못 설정해 쓰러지면서 다른 나무 가지에 걸릴 경우 낭패를 보게 된다. 대목장은 나무 관상을 기가 막히게 잘 본다. 서 있는 자태만 보고도 저 놈은 어느 부위에 적당한가를 직감적으로 파악하게 된다. 나이테 방향, 옹이의 강도를 보면서 나무의 용처를 결정하게 된다.
한옥 지을 때 주로 어떤 나무를 쓰는지 물어보았다.
“첫째가 소나무죠. 소나무 중 제일은 춘양목(일명 금강송, 적송)입니다. 일제 때 이들 나무는 일인들한테 인기를 독차지합니다. 태백산맥 상에 있는 울진, 봉화, 양양의 춘향목은 외부로 반출되기 위해 봉화 춘향역에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그 역에 모인 나무를 보고 춘양목이라고 불렀던 것 같습니다.”
그 다음으론 느티나무가 선호되고 참나무, 잣나무, 전나무 등도 즐겨 사용된다. 변 교장은 실제 팔공산 동화사 대웅보전 교체 작업 때 전나무가 재료로 사용된 걸 확인했다. 하지만 어떤 나무도 베어낸 뒤 바로 목재로 활용할 순 없다. 이래서 한옥집짓기가 어려운 것이다.
“나무로 집짓기의 요체는 치목(治木)과 결구(結構)에 있습니다. 치목은 나무의 수액을 제거하고 완전한 재료가 될 때까지 건조하는 걸 말합니다. 예전 어른들은 3년 여 벌목한 나무를 건조했습니다.”
일반 베어낸 나무는 즉시 ‘박피(剝皮)’과정을 거쳐야 된다.
“나무속에는 수많은 생명체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벌레, 박테리아 같은 균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뿌리가 절단되고 나면 일부 벌레들이 살기 위해 나무를 마구 파먹게 됩니다. 어떤 나무 벌레는 드릴처럼 나무속을 파먹고 들어가는데, 그럼 다 된 밥에 재를 떨어뜨린 꼴이 되고 말죠. 그래서 껍질을 빨리 벗겨 낸 뒤 바람이 잘 통하는 응달에서 건조해야 합니다. 건조시간은 다다익선이지만 보통 1~3년. 하지만 일부 대목장들은 나무는 베어진 뒤 8년까지 앙탈을 부리기 때문에 건조 문제가 여간 까탈스러운게 아니라고 말하더군요.”
일부 훈증 식으로 건조하기도 한단다. 계곡에 나무를 모아놓고 갈비, 흙을 섞어 불을 붙인 뒤 그 위에 나무를 올려 진액을 빼낸다. 자칫 태워 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산막을 치고 마치 도공처럼 다 그을릴 때까지 현장을 지킨다. 하지만 인공적으로 건조하는 방법은 표면만 건조되기 때문에 나중에 큰 후유증이 생긴다고 한다.
"목재는 속 수분 함유율이 15% 정도로 떨어질 때까지 건조시켜야 됩니다. 나무 건축이 좋은 건 비오는 날 습기가 증가해도 물먹는 하마처럼 제 몸 속으로 그 습기를 흡입하고, 날씨가 맑으면 다시 밖으로 그 습기를 배출하죠. 바로 이런 투습기능 때문에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공기를 확보할 수 있는 겁니다. “
나무도 상하가 있어 똑바로 세워야 한다.
변 교장은 필자에게 나무에 숨겨진 엄청난 비밀 한 가지를 더 알려줬다. 바로 목재도 위아래가 있다는 것이다. 상하 방향이 거꾸로 되면 자칫 집이 무너질 수도 있다고 한다. 상하가 바뀌면 마치 물구나무 선 것처럼 오랜 시간 하중을 견디기 힘들기 때문에 반드시 방향을 바로 잡아줘야 된다. 그럼 어떻게 위와 아래를 알 수 있는가.
“쉽게 말해 사람이 팔을 든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럼 어깨 부위는 나이테가 촘촘하고, 그 반대편은 드문드문 하죠. 다시 말해 가지가 달린 부위의 나이테 밀집도를 보고 상하 방향을 정하죠. 하지만 요즘 건축업자들이 그런 걸 염두에 두고 건축하지 않는 것 같아 무척 안타깝습니다만...”
기둥과 기둥 사이를 가로지르는 대들보의 경우 매끈한 것보다는 상방으로 구부러진 것을 더 선호한다.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아이를 등에 태우고 말 타기 장난을 칠 경우 어른들은 아이의 몸무게 하중을 줄이려고 허리를 낙타 등처럼 붕긋하게 올리죠. 그럼 더 큰 하중을 견디는 것과 같은 이칩니다. 만약 허리를 아래로 처지도록 하면 등뼈가 엄청 힘을 받겠죠. 잘 지은 고가에 가면 보가 거의 상방으로 휘어져 있습니다. 부득이 직선일 경우 나이테가 조밀한 부분이 아래로 향하게 되면 힘을 덜 받게 됩니다.”
그런데 처마 부위는 위로 향하고 있기 때문에 그곳에 사용되는 목재는 나이테가 조밀한 부분이 위로 올라가게 자릴 잡아야 된다고 강조한다. 주춧돌을 놓기 위해선 땅을 파야 되는데 특히 ‘땅심’ 을 잘 알아야 된다. 땅심이란 겨울에 얼지 않는 지점을 의미하는데 이를 건축학에선 ‘동결심도’ 라고 말한다. 중부지역은 60센티미터, 남부지역은 45센티미터. 물론 땅심 포인트를 잘못 잡으면 아무리 좋은 목재로 집을 지어도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가령 수맥 상에 기초를 두면 위험하다. 그래서 예전엔 땅을 파고 파둔 흙을 되메워 하루 정도 지난 뒤 흙이 푹 꺼지거나 물기가 감돌면 그런 곳은 흉지로 회피했다. 일단 흙이 그대로 있으면 초석을 잡아도 괜찮다. 초석은 ‘막돌 덤벙 주초’와 다듬은 돌을 놓는 ‘정평 주초’가 있다. 변 교장은 자연주의 건축법을 선호하기 때문에 막돌 덤벙 주초를 사용한다.
막돌과 기둥이 만날 때는 돌의 윤곽대로 밑동을 갈무리해야 된다. 이를 ‘그랭이 기법’이라고 말한다. 쉽게 말해 주초와 기둥 밑면이 궁합이 잘 맞도록 조정하는 작업이다. 이것이 내진설계의 한 방안이고 특히 진도6의 지진에도 충격을 자동적으로 흡수할 수 있다고 했다.
목수는 손바닥으로 나무와 대화를 한다.
목수의 손은 ‘최첨단 전자 센서’다. 그만큼 예민하다. 나무의 피부 결을 보면 대패질 방향을 어디로 해야 하는지 훤히 안다. 대패질에도 원리가 있다. 표면을 밀기 전에 미는 방향을 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보풀이 일 듯 나무껍질이 우툴두툴하게 일어나 목재를 망치게 한다.
변교수는 필자에게 한 수 더 가르쳐 주었다. 대패질에도 일제의 잔재가 남아 있다고 귀띔했다. 우린 흔히 대패질을 한 때 몸 안쪽으로 당기는데 이는 ‘일본식’이라고 말한다. 전통 방식은 밖으로 밀어내는 ‘미는 대패’가 원칙이었다. 하지만 일부 대하사극에서 당기는 대패질 장면을 보면 그는 씁쓸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다. 끌도 나무자루가 있는 건 일본식이고 우리는 자루까지도 모두 쇠로 만들어졌다고 강조했다.
한옥의 매력 중 하나가 은현(隱現)의 미학‘이다. 드러날 듯 하면서도 드러나지 않는 매력이다. 있긴 있으나 잘 드러나지 않는 구멍, 즉 은혈(隱穴)로 은정(隱釘)을 들이민다. 목재와 목재는 나비은장, 원두은장, 얼장이음 등 전통방식의 이음법으로 감쪽같이 접합시킨다.
“정말 한옥에 쇠못이 전혀 사용되지 않느냐”고 정색하고 물었더니 그는 빙그레 웃으며 훌륭한 목수라면 그렇다고 대답했다. 실제 처마를 받치는 서까래의 경우 ‘연정(椽釘)’이란 대장간에서 특수 제작된 못을 사용하기 하지만 이것도 집에 흠집을 내는 꼴이라 생각해 싸리나무로 된 나무못을 사용한다고 했다.
왜 쇠못을 사용하지 않을까? 이유가 있었다. 한옥 건축법상 같은 성질의 재료끼리 연결시켜야 전체 구조가 치밀하게 되기 때문이다. 쉽게 집을 짓기 위해 이런저런 못을 사용하면 결국 나무에 흠집을 내고, 균열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나무못을 사용하면 쇠못보다는 나무가 덜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목수라면 쇠못을 감히 생각 못하게 되는 모양이다.
집 한 채 지으려면 4~5개월이지만 실제 전통 방식의 한옥을 지으려면 약 3년은 걸린다고 한다. 기초 잡고, 기둥 세우고, 대들보, 납도리, 장여를 올리는 것도 힘들지만 목수 예술의 결정판은 지붕과 처마 물매 잡는데서 다 드러나게 된다. 지붕의 기울기를 어떻게 아름답게 내리느냐에 따라 집의 품격도 달라진다.
기초 재료를 산뜻하게 마름질하는데 대패가 사용되는데 그 종류도 너무나 다양하다. 평대패, 흑대패, 쇠실이 대패, 손잡이 대패, 뒤접대패, 둥근대패, 변탕(목재면의 가장자리를 곧게 밀어내거나 턱지게 깎아냄), 개탕(홈을 파는 대패), 대자귀 등 수십종이 넘는다. 저마다 사용처가 있기 때문에 그걸 다 알기 위해선 평생을 걸어야 된다고 한다. 자르는 건 섬유질 직각방향, 켜는 건 섬유질 방향, 심지어 대패질에도 순결과 역결 방향이 있으니 조심해야 된다. 손 감각이 탁월한 대목수들은 순결 방향을 직감적으로 안다.
목수들의 꿈은 ‘포(包)’ 집 짓는 것
“일반인들은 공포(栱包)의 미학에 대해 외경심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포집 기법은 궁궐과 사찰에 주로 사용됩니다. 공포란 지붕 처마 끝의 하중을 받치기 위해 기둥머리 위를 역학적이면서도 장엄하게 꾸미는 나무 부재입니다. 일반인들은 공포에 대한 이해가 좀 부족한 것 같은데, 쉽게 말해 이렇게 보면 됩니다. 우산이 크고, 우산 살대가 조밀하게 꽂혀 있으면 비를 덜 맞을 수 있는 것과 같이 선대 목수들이 처마를 좀 더 밖으로 뽑아내는 과정에 구조적이고 예술적인 측면이 조화된 공포 문화가 태동된 것 같습니다.”
변 교장은 한옥의 구조는 정말 복잡하기 이를 데 없고, 전문 용어가 학자들과 목수들 사이에 통일되지 않고 있어 이참에 전통 건축 용어가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통일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초가집과 기와집이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난 콘크리트 지상주의 시대 속을 ‘목심(木心)’으로 살아가는 변 교장이 어쩜 또 다른 의미의 ‘독립군’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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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향토와문화36-나무-참살이집을 만드는 참사람 청도한옥학교교장 변숙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