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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멋과 풍유를 담은 참살이 집의 밑그림, 집터 이야기
집짓기가 업인 나에게도 요즘은 집에 대한 말 못할 고충이 생겼다. 갑작스런 일로 살고 있는 집을 곧 남에게 내어줘야 할일이 생긴 것이다.
평소에 알고 지내던 복덕방을 찾았다 “집은 허름해도 좋으니 인심 좋은 마을에 터 좋은 곳 하나 봐주소” 하니 모두가 혀를 끌끌 차며 웃는다. 터 너른 한옥학교에 집 한 채 후딱 짓는게 무어 그리 대순가 하는 눈치다. 남의 급한 사정을 싱거운 웃음으로 반쯤 받아넘기는 그들을 뒤로 하고 그동안 눈여겨 봐오던 몇몇 마을을 발품 팔아 둘러보기로 했다.
내 평소의 지론으로 주인의 넉넉한 심성과 밝은 표정을 닮은 집을 ‘참살이 집’ 이라 이름 짓고, ‘참살이를 하는 이 ’ 를 일러 정이 익는 마을에 터를 잡고 자기 빛깔을 담은 집을 소박하게 지어 자연과 교감하며 이웃과 함께 삶을 달관하는 사람, 지족의 삶을 실천하는 속내가 향기로운 사람쯤으로 여길테면....
내가 짓는 집은 그 밑그림에다 민초들의 서민적 해학과 질박을 깔고, 어느 한켠에 조심스럽게 조선선비의 올곧은 삶의 멋과 풍유를 쬐금 담은 집. 그 바탕 위에다 나만의 무게중심을 바로 잡아갈 수행처 하나를 마지막 손질로 덧칠하고 싶더랬다.
삼대가 적선해야 좋은 집을 구할 수 있다던 옛 어른들의 말씀을 떠올리며 꿈결에 본 예의 그 집을 찾아 떠나본다.
첫째,터의 으뜸 가치는 밝고 명랑한 표정과 양명한 기운이다
칙칙한 땅은 사람의 품성을 어둡게 변화시킨다. 추위로 움츠리고 행동에 제약이 있는 터는 부정적이고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하루 종일 볕이 감싸는 터는 밝고 명랑한 기운이 넘친다. 긍정적이고 활기찬 삶을 누리고 싶다면 양명한 땅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따사로운 햇볕을 쬐며 명상을 하고 있을 때 마침 옆을 지나던 알렉산더대왕이 말하였다. “현자시여! 내가 돕고 싶노라. 소원이 무엇입니까?” 디오게네스는 하던 일을 멈추지 않고 퉁명스럽게 말하였다. “내 소원은 당신이 지금 가린 햇빛을 온전하게 해주는 것 뿐 더 이상 아무것도 없소.”
건축법규에 의하면 우리가 햇볕을 누릴 최소 권리는 낮의 길이가 가장 짧은 동지기준 2시간 이상이다. 보다 쾌적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4시간 이상 필요한 것이 사실이지만 이웃을 위해 햇빛도 나누는 오늘의 가치가 새롭게 느껴진다.
둘째, 집터는 방정한 모습, 안온하고 편안해야 한다.
풍수에 대한 견해가 없는 이라 하더라도 좋은 집터에 서면 우선 마음이 평온하다. 양명하고 안온하고 편안하다면 집터로는 적지이다.
터는 건강해야 하며 그 형상도 반듯하고 정직해야한다. 한쪽으로 치우쳐 모나면 여러 가지 탈이 생긴다. 선인들은 집의 배치 모습도 길하고 흉한 기준을 두었다. 예를 들어 즐겨 사용한 배치형태인 입구(口)자는 음식이 입을 통해 들어오듯 재물도 마찬가지로 여겨 길한 문자를 형상화한 좋은 사례다. 상류주택에서 천석꾼, 만석꾼 집안의 배치모습이 口자가 많은 것이 그러한 이유이다.
얼마 전에 내가 그린 참살이 집도 口자 형태인데 우리 식구가 함께 누릴 공간으로 지금까지의 집짓기 경험을 가득 담은 소산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누릴 삶의 그릇으로서의 집이라면 당연히 가족의 생활방식이 녹아 들어야하며 개성이 번뜩이는 생각이 온전히 담겨진 집이어야 한다.
셋째, 좋은 집터는 인심 좋은 마을에 있다.
“명당은 얻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라고 학생들에게 즐겨 말하곤 한다. 좋은 집터를 구하는 안목은 자연에 대한 통찰의 지혜이다. 땅은 살아 있다. 명당을 누릴 복이 없는 자는 땅이 알고 거부하며 설령 운 좋게 좋은 터를 열었더라도 복전(福田)을 일구지 않으면 결국은 땅으로부터 내침을 당한다. 자기 분수껏 명기에 집 지을 요량을 하였다면 땅을 대하기를 어머니 품속처럼 여겨 마구잡이로 흠집 내는 일을 극도로 삼가야 한다. 자연과 이웃과의 조화로운 삶을 경영하지 못한다면 명당은 없는 셈이다.
아프고 병든 땅도 고치면 좋은 땅이 될 테지만 인심이 사나운 동네에서는 좋은 집, 나쁜 집도 없다. 삶을 나눌 정다운 이웃이 없는 삶터에서 독불장군처럼 불행하게 살고 싶지 않기 때문에 나는 오늘도 이 마을 저 마을을 기웃거리고 있다. 다만 내 복전(福田)의 무게를 챙기며....
넷째, 배산임수(背山臨水)한 마을을 찾아서
“삶에 있어 집터 고르는 법은 매우 중요하다. 물과 물이 통하는 고장이면 으뜸가는 곳이라 한다. 산을 뒤에 두어 배산 하고 앞으로 호수를 둔 임수한 지형이라면 첫 손을 꼽는다. 국면(局面)이 널찍해야하며 형국에 흐트러짐이 없으면 생산한 재산이나 복덕(福德)을 잘 유지할 수 있다.” 조선후기 실학자인 유암 홍만선(1643~1715)이 산림경제에서 밝힌 집터 고르기에 대한 요결이다.
옛 선인의 집터 이야기가 옛 집 짓는 이치를 밝혀 오늘의 집인 참살이집을 짓고자 하는 나에게 여전히 우뢰처럼 들린다.
집이 뭣고! 옛 집에 담긴 의미는 무엇이며, 오늘을 사는 이의 집은 어떠해야 하는가? 여전히 귓전을 맴도는 이 화두는 우리네 살림살이가 지속되는 한 계속될 것이다. 개성이 번뜩이는 건강한 집을 지어 빛깔 곱게 살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업 삼아 짤막한 편지를 띄워 본다. 자연 속에 모나지도, 뽐내지도, 도드라지지도 않은 삶의 공간을 자연의 일부로 살짝 들여앉히는 요술쟁이처럼 나도 때로는 한줄기 바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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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과 풍유를 담은 참살이 집의 밑그림, 집터 이야기 / 목눌(木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