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숨결 - 육관응
 도반이여! 저녁나절 날씨가 좋지 않아 황토방 아궁이에 불을 지핍니다. 우선 종이로 불을 붙인 후 작은 가지에 이어 장작들을 넣어 불기운을 강하게 합니다. 처음 불을 지필 때와는 다르게 훈훈한 기운이 느껴져 옵니다. 만일 젖은 장작이었다면 연기만 많이 나지 이런 느낌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1시간쯤 불을 때고는 방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훈훈한 온기가 전해져 옵니다. 이 기운은 그냥 전해지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궁이와 구들과 굴뚝이 제 역할을 한 덕분입니다. 우리의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에너지를 공급받는 입은 아궁이요, 오장육부와 단전은 구들, 항문은 굴뚝이라 할수 있겠지요.
도반이여! 제가 이런 생각을 갖게 된것은 청도 한옥학교를 다녀오고 난 이후 부터입니다. 며칠전 지인들과 같이 일면식이 있는 한옥 학교장을 만나기 위해 낙대폭포 올라가는 남산 중턱에 자리 잡은 범곡리로 찾아 갔습니다. 학생들이 실습으로 지은 사모정과 육모정, 해우소가 눈에 들어옵니다. 마당에 들어서자 옅은 연두색 차림의 교장선생님이 우리들을 반겼습니다. 대학원에서 전통건축을 전공한 그의 소명의식에 공경을 표하며 예를 올렸습니다. 그런 후 강의실 겸 사무실로 쓰여 지고 있는 본 건물인 나무 너와집에 들어가서 전통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청도에서 태어나 청도를 벗어나지 않는 토박이인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힘이 묻어났습니다.
“이론은 장인정신과 자기 세계를 이루는데 도움을 주기는 하나 나무의 숨결을 직접 몸으로 느끼고 익혀야 합니다. 자기 스스로 질문하고 몸으로 체험하는 과정에서 해답을 얻을수 있습니다.”
그의 소박한 이야기 속에서 나무를 다루는 법문이 녹아 있었습니다. 우리의 몸도 마찬가지라 봅니다. 몸이 무엇을 원하는지 몸과의 대화가 필요합니다. 그 시간이 오래 걸릴지라도 그 흐름을 관찰해야 합니다. 언제까지면 될 것이라는 답이 없습니다. 자문할 필요도 없습니다. 오늘도 집중하고 내일도 집중할 수 밖에 없습니다.
목수가 나무의 숨결을 느끼듯 내면의 흐름에 집중하다 보면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 비소리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몸 상태에 따라 여러 가지 소리를 들을수 있습니다. 수량에 따른 물소리, 바람종류에 따른 소리, 새종류에 따른 소리, 강수량에 따른 소리만 있을 뿐입니다.
이 소리들은 처음에는 잘 들리지 않지만 집중하면 들립니다. 나무도 법문을 하고 몸도 법문을 하고 있습니다. 몸의 맑음 정도에 따라 법문의 강도가 다르게 들립니다. 눈, 코, 귀, 입도 법문을 하고 있습니다. 법문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무가 하는 법문, 몸이 하는 법문을 듣기 위해서는 흐름을 계속 유지하며 집중해야 합니다. 체험이 없는 이론은 한갓 지식일 뿐입니다. 체험이 없는 말은 그림속의 일상원입니다.
“나무의 트집을 숨죽이게 하는 데는 8년이란 세월이 걸립니다. 선배 목수들이 하자 없는 집을 지은 것은 나무의 성질을 잘 다루었기 때문입니다. 나무를 다루는 것도 경험적이고 직관적인 공부입니다. 설계도 직관을 하게 되면 잘못된 부분이 보입니다.”
이 이야기 속에서도 진미가 숨어 있습니다. 나무의 틀어짐을 잡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리듯 우리들도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경우는 없습니다. 기다림의 진정한 의미는 계속 행함을 의미합니다. 모든 일과 이치에는 직관이 필요합니다. 직관은 집중과 몰입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우주와 자연의 이치에 대해 아는 것도 직관입니다.
이 직관은 누가 대신 해 줄 수 없는 것입니다. 오랜 기간 동안 지식을 통해 느꼈던 작은 움직임들을 떠올리면 스스로 웃음 지어 보는 것도 이유가 있습니다. 그동안 하찮게 여겼던 동네 나무들과 풀들도 새로움으로 다가옵니다. 요즘 나무와 풀잎 하나에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오랫동안 관찰하고 직관하는 것도 그들과 대화를 하기 위함입니다. 세상 모든 이치도 직관을 통하지 않고는 진척이 없습니다.
“집짓기 프로그램에 참석한 학생들은 3개월 정도면 제법 목수티를 냅니다. 자기 집 짓는 데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비 대목장을 길러 내는 목수양성과정은 4개월이 걸립니다. 진정한 목수가 되겠다는 사람만 선별하여 오직 도제 양성 방법으로 운영하게 됩니다.”
이 말을 들으면서 나의 공부도 목수티 만 내는지, 내 집만을 짓기 위해 안분하고 있는지, 아니면 예비 대목장의 길에 접어든 공부인 인지 반조해 봅니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더 먹고, 춥지 않아도 옷을 더 입지 않은가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 봅니다. 공부인 중에서도 더 먹으려는 사람, 더 입으려는 사람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자기의 성품을 되돌아보고 본래 수행을 하는 목적을 비추어 보는 것이 공부인의 몫이라 봅니다. 그래도 중간단계에서 포기하는 사람들을 종종 봅니다. 쉽게 지친다고 말합니다. 목적지에 가보지도 않고 힘들다고 말하는 자신을 반조해 보아야 합니다. 내가 나를 포기하면 누구도 나를 구제해 주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꾸준히 계속해서 가는 수 밖에는 없습니다.
공부는 한 단 한 단 올라가면서 끊임없이 답을 찾는 과정입니다. 이 단계에서 찾아오는 몸과 입과 마음의 경계가 나를 더 키우는 보살들입니다. 그 보살들을 품에 안고 달타령을 하면 됩니다. 감응이 뒤따릅니다. 이 모든 원리도 한옥 건축의 원리와 그대로 적용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의 말을 조용히 음미해 보았습니다. 신선한 맛이 납니다.
“최선의 건축은 구조, 가능, 아름다움에 있습니다. 기초는 짜임입니다. 기초가 부실하면 건물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기능은 내부공간과 외부공간의 조화, 자연과의 조화이며 미는 창작에서 나와지는 조형적인 아름다움입니다.”
수행에도 기초와 조화의 아룸다움이 필요합니다. 수행의 기초가 부실하면 높은 집을 지을수 없습니다. 경계에 흔들립니다. 공부인은 자연과의 조화, 사람과의 조화로움을 추구해야 한다고 봅니다. 대중의 공감을 벗어난 주장과 욕심을 우선시하는 공부인은 조화와 거리가 있습니다. 조화는 평화로움입니다. 조화는 너와 내가 하나 됨을 의미합니다. 이런 조화가 수행의 자양분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결국 튼실한 기초와 조화에 바탕한 공부는 얼굴에 그대로 나타납니다.
한옥학교에서 많은 감상을 가졌습니다. 그 분과의 대화는 수행의 향기입니다. 오랜만에 시원한 기분을 가졌습니다. 나무를 새롭게 볼수 있는 눈을 가질수 있게 된 것만 하여도 수확입니다. 열매입니다.
대화를 마치고 너와집 난간에서 청도읍을 바라봅니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니 저 아래 저수지와 청도읍 전경이 가슴에 안깁니다. 읍에서는 느끼지 못한 감회였습니다.
나무와 흙, 그리고
다정한 사람.
마음자리에서
하늘 그림이 그려진다.
<고운만남>
도반이여, 밖으로 나오는 길에 그 분은 나무와 흙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심성이 곱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인연의 소중함을 빼 놓지 않고 강조하는 그의 눈빛을 쳐다보았습니다. 맑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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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숨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