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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안양에 사는 안양 보화당한의원 원장 김덕종입니다.
작년 4월에 한옥학교에서 하루밤 묶었었죠.
청도 어르신 한방 무료진료때 말입니다.
그때는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이길량 교무님으로 부터 그 뒤로도 많이 도와주신다는 말씀 듣고 있습니다.
그때 치료받고 나은 할머니가 전화도 하시고,
안양까지 찾아온 분도 있었답니다.
한번 침맞고 오래된 고질병이 나은 건 저도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오늘 동아일보에 한글학교가 크게 소개되었군요.
저희가 묵은 그 집에 사진에 크게 나와있구요.
변 교장님이 그렇게 훌륭한 일을 하시는 줄 짐작만 했었는데
새삼 위대하신 분을 만났었군나하고 생각하였답니다.
뜻 깊은 문화사업이 활짝 펴서
역사의 맥을 잇고, 새 장을 여는 열매 맺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안양에서 김덕종 올림니다.
(그때 쓴 글 한편 첨부합니다)
청도 가는 길
토요일 오후였습니다. 한 주일의 모든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시간이지요. 5시 반에 퇴근하여 짐을 꾸리고 서둘렀지만, 나와 우리 한의원 간호사 세 명과 나의 절친한 친구 황 원장이 정작 도시를 빠져나가는 고속도로에 들어선 시간은 저녁 7시였습니다. 길도 밀리는 주말 오후라는 생각에 시간을 아끼려 도시락으로 저녁을 준비했습니다. 다행히 길이 한산하여 최고속도로 달릴 수 있었던 것은 다음 주가 황금연휴라 그 영향인가 싶었습니다.
그래도 청도 까지는 꼬박 5시간이 걸렸습니다. 대구부터는 생전 처음 가는 길이었지요. 이름이 청순하여 4월 하순의 신록에 어울린다고 생각했지만, 칠흙같이 어두운 밤 12시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산중턱 근사한 한옥 집에서 이 교무와 그 집의 주인인 변 사장을 만났습니다. 전통 한옥 짖기를 가르치는 ‘청도 한옥학교’ 교장 선생님이기도 하였습니다.
수인사가 끝나고 우리만 남았는데, 예술가의 집이 확실한 아름다운 그곳이었지만, 오랫동안 비워놓은 데다, 난방도 없고, 창호지는 숭숭 구멍이 뚫려, 영화에 나오는 흉가처럼, 잠자기에는 너무나 추웠습니다.
있는 대로 옷을 다 껴입고, 화장지를 식수에 적셔 바람구멍을 막았습니다. 작은 전기장판과 얇은 이불이 있었지만 추위를 견딜 수는 없었습니다. 자는 둥, 마는 둥 새벽이 되고, 짙은 안개 속에 시내에 사는 집 주인이 우릴 픽업하러 오셨습니다. 온천욕을 간단히 마치고, 시내 유명한 식당에서 ‘고디탕’이라는 생소한 음식으로 아침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행운이었습니다. 작은 다슬기를 주재료로 들깨를 갈아 국물을 낸 생전 처음 보는 이 음식은 담백한 추어탕과 함께 정말 일품이었습니다.
일요일 아침 8시, 읍내에는 우리의 봉사활동을 알리는 방송이 터져 나가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읍사무소 2층 강당에 마련된 봉사활동 장소로 도착해 보니 벌써 많은 청도읍내 어르신들이 우리보다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홍보가 잘 되었을까, 몇 분이나 와 주실까 하던 걱정이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전날 출발해서 대구에서 일박을 한 다른 봉사단들을 태운 대형 버스도 도착을 했습니다.
아침 9시. 행정력을 동원하여 도와주신 읍장님이 나오셨더군요. 제 생전에 읍장이란 직함을 가진 분은 처음이었는데, 참 후덕하시고 온화하신 어른이셨습니다. 읍장님의 인사에 이어 본격적인 봉사활동에 들어갔습니다.
“청도 어르신 한방 무료봉사”는 동창인 이곳 이 교무를 돕자는 생각에서 시작하였고, 원광보건대학의 후원을 받고, 원광대 봉사 동아리 ‘다함나’가 참여하는 다목적 지역봉사로, 65세 이상의 지역 어르신을 대상으로 한 한방 무료진료 외에도 영정사진 찍기, 시력검사와 안경 드리기, 머리염색과 파마 등을 준비했으며, 우리와 인솔자, 자원봉사자, 학생 등 모두 46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봉사단이었지요. 총 경비가 1,500 만원 정도 들어간 적지 않은 행사가 되었습니다.
한방진료는 우리 안양 팀이 맡은 거죠. 진료실은 강당의 단상과 단상 옆의 작은 대기실에 메트리스를 깔고, 책상과 칠판들로 가리개를 대신한 엉성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시작부터 난리가 났습니다. 너무나 많은 어르신들이 강당을 가득 메운 채, 서로 자기가 먼저라고 아우성치는 바람에 완전히 시장바닥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보다 못한 친구들과 읍사무소 직원이 나서서 질서를 잡는데, 나중에 보니 목이 다 쉬었더군요. 얼마나 시끄러운지 마이크도 소용이 없었다고요.
전혀 통제되지 않는 어르신들의 끝없는 자기주장과 요구사항이 거듭되는, 간호사들과의 전쟁도 볼만했습니다. 마침내 최 간호사가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으니까요. 이상한 일입니다. 환자들은 의사와 1:1일 때는 모두가 너무나 착한 학생 같은데, 간호사들에게는 독한 시어머니같이 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더구나 ‘봉사’하러 온 사람들에게 말입니다. 물론 어쩌다 그런 일도 있다는 거지만요...
우리는 진찰, 건강상담, 보건지도, 침 치료를 하고 준비해간 과립제 한약과 탕제, 환약 등을 몇 일분씩 투여했습니다. 시골 어르신들이 순수해서 그러시겠지만, 황 원장 책상 위에 놓인 다과를 진찰도중에도 천연덕스럽게 열심히 잡수시는 할머니도 있었고, 미모의 간호사들에게 며느리 삼고 싶다며 전화번호 적어달래는 엉큼한 영감님들도 있었답니다.
깜깜한 오밤중에 들어와서 안개가 희뿌연 한 아침 8시부터 실내에서 정신없이 움직이다 보니, 청도에 온지 12시간이 되었어도 아직 청도를 보지 못했습니다. 진료 도중 환기시키려고 창문을 열다가 드디어 청도를 보았습니다. 안개 걷히고 해가 난 창밖엔 연두색의 높고 푸른 산 그림이 바로 코앞에 보였습니다. 사방으로 병풍처럼 예쁜 산들이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과연, 청도라는 이름대로 아름다운 전원 도시였어요.
영감이 집을 나가 화병이 되었다는 할머니, 평생 고된 일만 하다가 척추와 무릎관절이 고장 난 할아버지 등 나름대로 사연을 가진 어르신들이 끝없이 몰려오는 상황이었지만, 약품이 떨어져 나중엔 접수를 중단해야 했습니다. 늦게 오신 분들을 사정사정하여 그냥 돌려보내려니 정말 염치가 없더군요. 과수원이나 밭이 많아 노동을 주로하신 분들이라 척추나 무릎의 퇴행성관절염 환자가 많은 외에 고혈압과 위장병, 호흡기 질환이 많았습니다.
4~50평은 됨직한 강당의 한쪽에선 한방 진료가 있고, 다른 코너엔 사진을 찍느라 써치 라이트나 우산 같은 조명기구들이 서있고, 연신 플래시를 펑 펑 터뜨리고, 그 옆에는 파마 헤어켓을 쓴 할머니들이 줄지어 앉아있고, 안경 한다고 들락거리는 사람들이 소란한 가운데, 학생들이 대기 중인 어르신들에게 사탕을 나눠드리고, 준비한 차와 떡을 돌리는 모습들이 보였습니다. 이 잔치를 주관한 우리 친구들 외에는 서로 모르는 사이였지만, 하나의 팀이 되어 열심히 조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하루 동안 한방 진료로 120여 분, 안경 받아간 분이 210여 분, 영정사진도 110여 분,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이발 미용 파마가 50여 분 정도 다녀가셨습니다. 연인원 460여 어르신들이 다녀가신 거죠. 부지런한 분들은 네 코너를 다 돈 경우도 있었습니다. 일테면 일찍 가서 안경 받고, 얼른 사진 찍고, 파마 모자 쓰고 기다리는 동안에 진료를 받는 것입니다. 정말 부지런한 분이지요. 그 복잡한 속에서도 말입니다.
행사 말미에 격려 차 와주신 교구장님이 말씀 하셨습니다.
“나쁜 일에 우르르 몰려가는 사람도 있고, 좋은 일에 우르르 몰려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쁜 일에 몰려다니는 사람들은 묘하게 나쁜 일에 모여 같이 사고를 당하게 되고, 좋은 일에 모이는 사람들은 좋은 일에 모여서 나쁜 일도 피하게 됩니다. 그것이 인과입니다. 뜻 깊은 일에 와주신 여러분들, 너무 장하십니다. 잘 했습니다.”
정말 열심히 전쟁을 치루 듯 하루 진료를 마치고 나니 몸은 천근이나 되는 듯 무거웠지만, 마음은 신록처럼 싱그러웠습니다. 청도 특산이라는 묵 집에서 이른 저녁을 먹었습니다. 친구들은 다시 각자의 집으로 흩어졌습니다. 이번 일은 그 ‘친구’라는 의미를 다시 새겨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살다보니, 누구를 만나는가, 무슨 생각을 하는가가 정말 중요하다고 여겨집니다.
‘친구’들은 어린 날, 익산의 고향친구들로, 정녀가 된 이 교무가 경상도 시골 ‘청도’에서 봉직한다기에 그를 돕기로 하고, 무얼 도울까를 고민하다가 청도 지역에 ‘어르신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결의했던 것입니다. 부산 신라대학교의 홍 교수는 몇 차례 읍장님을 만나 실무적인 것을 협의했고, 원광대와 보건대에 봉직하는 조 교수, 장 교수가 학생들을 이끌고, 대학과 여고에 재직 중인 이 선생, 김 선생 등이 열심히 도왔습니다. 해외에 나가있는 친구들은 어쩔 수 없이 빠졌습니다. 한 동네서 코흘리개로 자라 세계로 흩어진 친구들이지만, 장성해서 함께 뜻을 모은 이번 일이 누구보다도 우리 자신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하였습니다.
일이 끝나고 나니 마음에 감사한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장소를 제공하고, 행정 편의를 봐주신 읍장님과 관계자들, 다양한 구성의 자원봉사자들, 나의 친구들, 정말 감사합니다. 특히, 그동안 잠 못 자고, 가슴 졸이며 준비해준 이 교무께도 따뜻한 마음을 보냅니다.
그래도 마음에 걸리는 건 있습니다. 추운 집에서, 외롭게 홀로 고생하는 이 교무의 바람에 날릴 듯이 약해 보이는 가벼운 걸음걸이와 휑한 눈빛이 청도에서 돌아온 뒤에도 오랫동안 생각납니다. (2003년 4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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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교장님, 안녕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