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연 정 상 량 문
유세차
단기 4월 29일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범곡리 한옥학교 맑은 터에 수연정의 상량을 천지신명께 삼가 고하나이다.
신묘년 정월의 매서운 추위를 헤치고 각지각처에서 각자의 삶을 살던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온전한 목수가 되고자 한옥학교에 모였습니다.
심중의 뜻한 바는 다를 수 있으나, 새가 둥지를 찾아들듯이 같은 날 자발적으로 한옥학교라는 울타리 안으로 모여들어 45기 동기생이 되어 지난 석 달 동안 한솥밥에 동고동락 하며 지금 상량식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천지신명이시여!
세상만사가 인연소치란 말을 새삼스레 이곳에서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알 수 없는 그 옛날 인연의 고리가 없었다면 어떻게 수십 년 동안 일면식 없이 지내다가 짧지 않은 기간 동안 한식구가 되어서 서로 배려하고 보듬으며 조화롭게 웃음꽃을 피우며 보낼 수 있었겠습니까? 해서 저희들은 한 사람 한 사람 소중한 인연들이 모여서 일심으로 정성을 다하여 이 사모정을 완공하였기에 정자이름을 수연정이라 칭하기로 하였습니다.
옛사람이 말하길 졸렬한 목수는 버릴 나무가 많고 능한 목수는 버릴 나무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작은 주춧돌 하나가 그 무거운 집을 받치고 있듯이 작은 나무는 작은 부재의 역할이 있고 대들보는 대들보의 자리가 있습니다.
천지신명이시여!
저희들은 그 어떠한 인연도 소홀히 하지않고, 허망한 좋은 인연을 기다리는 몽상가가 아닌 지금 바로 선 자리에서 좋은 인연을 만드는 현실에 사는 현명한 자가 되고자 합니다.
오늘 이 좋은 상량식이 또한 이별의 장이기도 합니다. 기쁨과 슬픔이 항상 상존하는게 세상의 이치인줄 알지만 지난겨울 천만년 암벽을 부둥켜안고 있는듯 한 낙대폭포의 빙벽, 어렴풋이 동요속의 가사로만 머릿속에 맴돌든 복사꽃 분홍색의 선연한 아름다움, 함박눈처럼 휘날리며 떨어지는 일주문 앞에서 바라보는 달밤의 벚꽃 정취와 붕도헌 온돌방에서 동료들의 정겨운 웃음소리.
이 모든 것들이 마음속의 화인이 되어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아련한 그리움으로 추억 될 것입니다.
천지신명이시여!
저희들이 이곳 3개월의 짧은 기간에 감히 온전한 목수를 입에 담을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새벽의 찬기운을 울리며 소리치던 대목장의 길이 메아리쳐 저희들의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되새김질하며 ‘집이 뭣꼬’를 선승의 화두같이 비수처럼 품고 자신을 담금질 한다면 어찌 온전한 목수의 길이 요원하다고만 할 수 있겠습니까?
천지신명이시여!
오늘 상량을 하고 뜻한 바를 이루고자 험한 세상에 나가는 45기 김영국, 김영훈, 김준호, 박환, 사공호, 양동수, 엄윤성, 이준희, 장주남, 최윤길 이상 열명의 앞날에 빛나는 4월의 햇살처럼 서광을 내려주시옵고 부모님이 주신 귀한 몸도 온전하게 지켜주시옵소서. 또한 이 배움터를 잇는 46, 47기 모두 몸성히 뜻한 바를 이루어 나갈 수 있도록 살펴 주옵소서.
그 동안 저희들에게 한옥의 정신과 아름다움을, 열정을 담고 고매한 풍모와 인격으로 담담히 풀어내신 변숙현 교장선생님, 탁월한 현실감각과 사적인 감정 분출시 냉소도 거침없는 박주용 교수님, 선비풍의 냉철한 채대수 교수님, 앞으로 설계에 많은 도움을 주실 윤기석 교수님,
그리고 특히, 그 어떤 실수도 웃음으로 넘기시는 천진불 같은 박윤철 교수님께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아울러 한옥학교에서의 생활에 도움을 주신 양우성, 이희정, 정해성 실장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비록 박주소찬의 음식이나마 저희들의 정성을 담아 천지신명께 올리오니 삼가 흠향하여 주시옵소서.
신묘년 사월 이십구일
한옥학교 대목수과정 45기 일동
상향
수연정상량식 - 대목수양성 45기 실습(2011.04.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