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
집 짓는 게 별건가요? 사람 사는 훈기가 느껴지고 마음 편하고 모나지 않으면 되는 거죠.
손 수 집을 지어볼 요량으로 흙의 기운을 재어보고 나무의 마음을 알아봅니다.
뽐내고 으스대는 집은 손끝이 매운 솜씨와 많은 공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주인의 후덕한 심성을 담는 그릇쯤으로 여기는 소박한 집은 자연에 순응하는 도리만 알면 누구나 지어낼 수 있답니다.
밤이면 식구들이 모여앉아 집의 모습을 그려보고 경험을 빌려 고치길 거듭하며 마음의 채비를 단단히 해 둡니다. 이웃의 넉넉한 인심은 시작을 재촉하였습니다. 드디어 길일을 가려 터를 울리고, 들과 산과 내에 지천으로 널려있는 흙과 나무와 돌에다 생명을 불어넣기 시작합니다.
먼저 나무의 고약한 성질을 오행으로 다스리며 먹을 놓고 자귀와 톱과 대패로 바심질 합니다. 굽은 나무는 굽은 대로 곧은 나무는 곧은 대로 소중한 역할을 미리 일러두고 챙기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막돌 덤벙주초는 질박해 썩 마음에 듭니다. 미리 다져 놓은 자리에 초석을 앉히고 나이를 메기고 기둥 세울 준비를 서두릅니다.
기둥은 제 자란 모습과 햇빛을 염두에 두어 배치하며 초석의 생긴 모양을 그렝이질 하여야 무탈합니다.
사람 사는 맛이 제대로 느껴지려면 인간적인 척도가 적용되어야 합니다. 머리를 이고 두어 뼘쯤 올려 천장을 들이는 기준 삼아 점점 아담한 집의 골격이 완성되어 갑니다.
벽체는 흙으로 단장하려는 애초의 의도를 확인하고 미리 고운체로 모래를 치고 황토도 선별해 둡니다. 손가락 하나 크기로 짚을 썰어 소금물에 숨을 죽이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표토를 걷어내고 동쪽에 떠오르는 해의 기운을 한껏 받으며 기운을 축적해 둔 황토를 본 순간의 희열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숙성한 황토와 짚과 모래와 물을 적당히 섞고 잘 이겨 벽을 발라가노라면 생명의 기운이 일렁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지붕은 많은 고민을 하게 합니다. 뒷산의 능선과 흙집의 빛깔, 주위와의 조화는 지붕의 모양과 재료를 결정하는 잣대가 되었습니다.
심사숙고한 결론은 너와지붕이었지만 소나무로 너와를 만드는 것은 시간과 품 모두 만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너와가 빚어내는 황금빛 고운 빛깔은 지금도 여전히 감동으로 남아있습니다.
집을 지은 지 어느덧 만 5년이 지났습니다.
이제 집에도 연륜이 묻어나고 사는 사람의 심성이 녹아드는 가 봅니다.
정겹고, 편안하고, 삶의 의욕과 보람이 솔솔 재미로 늘어납니다.
지금은 자하산방이란 이름으로 둥지를 튼 귀중한 보금자리이지만,
언젠가는 나이가 차고 모진 풍우를 지탱하다 한 줌 흙으로 돌아가는 그 날 우리는 후회하거나 아까와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고 죽는 것이 한 고리요, 제 왔던 곳으로 남김없이 돌아감은 온전한 우주적 삶의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집의 생명력을 다시 한번 음미해 봅니다.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 / 목눌(木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