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허롭게 웃음짓는다. 텅 빈 거울 앞에 서서 애써 또렷한 중심 붙들고 해맑은 미소 담아보지만, 소년은 가고 없고 청년을 지나 어느덧 장년의 낯선 얼굴이 서성댄다. 삶의 표정은 마음 따라 일어나는 또 하나의 내 모습이다. 국어 교과서에 실린 아름다운 전설이 생각난다.
"어느 날 오후 해질 무렵 어린 소년 어니스트는 어머니와 자기네 오두막집 문 앞에 앉아 큰 바위 얼굴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어린 날의 이상적인 꿈은 결국 큰 바위 얼굴 그대로의 삶을 동경하고 실천하게 했던 소중한 불씨가 된 셈이다. 너새니얼 호손이 짓고 피천득이 옮긴 '큰 바위 얼굴'은 지금도 나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커다란 명제를 던져주는 값지고 귀한 책이다. 온화한 낯빛에 빙그레 웃는 모습은 큰 바위 얼굴을 닮아가는 또 하나의 기쁨이리라.
집에도 표정이 뚜렷하다.
고뇌하는 삶을 담는 그릇은 칙칙하지만 생동하는 기운이 일렁이는 한옥의 모습은 밝고 명랑하다. 집의 얼굴은 창호가 압권이다. 한옥의 창호를 엿보면 문과 호는 출입에 필요한 시설이며 창과는 엄연히 구분된다.그러나 창에다 호가 하나 더 첨가된 창호는 한국전통 건축의 고유 언어로 중요한 건축 구성요소이다. 창호는 볕 잘 들고 신선한 공기 쐬며 때로는 먼 산의 절경을 끌어들이기 위한 창의 기능에다, 방으로 드나들기 위한 외짝지게문 호의 의미를 보탠 말이다. 대개 문은 대목장이 만들고 창호는 소목장이 만드는 것으로 구분이 되기도 한다. 마음의 창에 견주어 집에도 창의 의미는 대단하다. 그 꾸밈새는 주인의 격을 대변하며 그 꼴은 집 전체의 얼굴이 되고 만다. 그래서 창호의 생김이나 문살의 형태, 크기, 기법, 재료 등은 아주 꼼꼼히 따져보고 한 푼의 흐트러짐도 없는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창호의 풍부한 조형언어는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요술쟁이다. 앙증스러운 눈곱자기 창의 비밀은 실소를 자아내는 풀빵 같은 정겨움이 묻어난다. 우주의 이치를 담아내는 정교한 살 짜임은 흐트러짐 없는 선비의 몸가짐이다. 천연덕스러운 웃음 새어나오는 백성들의 문 꼴은 자연스럽고 질박한 해학적인 창이다.
마음의 창은 영롱한 눈빛으로 더욱 고결해지고 한옥의 창은 사는 이의 심성으로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마음의 창 / 목눌(木訥)
